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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보다 손을 쓰고 싶다
김두범·29세·자전거 기술자

 

 

 다시금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자전거를 단순한 탈것이 아니라
오래된 벗처럼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그 자전거가 고장 나면 마땅히 수리하러 갈 데가 없다.
동네마다 있던 작은 자전거포가 다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느닷없이 젊은 자전거 수리공을 만나고 싶어졌다.


다행히 책과 자전거를 사랑하는 지인이 당인리 발전소 근처에서 ‘두부공’이라는 자신의 별명을 딴 자전거
공방을 하는 ‘두부공’ 김두범을 소개해줬다. “홍대 국문과 나와서 자전거 수리 하는 친구가 있어요.
두부처럼 생겨서 두부공인데, 그 친구 수제 자전거를 만드는 프레임 빌더이기도 해요.
머리 쓰는 일보다 손 쓰는 장인이나 기술자가 되고 싶다는 자기 철학이 확실한 친구라
 <시리즈>가 만나면 아주 좋을 거예요.” 그래서 고장 난 채 2년째 방치되어 있던

나의 가여운 자전거를 끌고 두부공을 만나러 갔다.


고가 수제 자전거를 제작, 판매하기도 하지만 동네 사람들의 오래된 자전거 수리까지 해주는 걸로 알고 있다.
 그 귀찮은 일까지 하는 이유가 뭔가?

 

동네 사랑방 역할을 했던 옛날 자전거포를 하고 싶었다.
사소한 수리도 해주고 싸구려 기성품도 팔지만 수제 자전거를 직접 만들어 팔기도 하는.
고급 수제 자전거만 만들어 파는 숍으로 포지셔닝했다면 아마도 돈은 더 많이 벌었겠지만
그런 건 사람 냄새가 나지 않아 싫었다.


 

그런데 국문학도가 어떻게 화이트칼라 일을 마다하고 손에 기름때 묻히는 일을 하고자 했나?


대학교 1학년 때 정운영 선생님 강의 듣고 막연히 ‘넥타이 매고 살지 말자.
머리 쓰는 일 하지 말자. 내 손으로, 내 노동으로 뭔가 생산하는 일을 하며 살자’고 마음먹었는데
 나중에 졸업할 즈음에 어머니가 한창 자전거를 타시며
그 덕분에 당신 삶의 영역이 넓어졌다고 말씀하시는 걸 듣고
 자전거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구체적인 꿈을 갖게 되었다.

 

한국 바이크 아카데미에 들어가 자전거 정비를 먼저 배우고 수제 자전거 만드는 기술을 익히기 위해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걸로 안다. 미국 유학이 필수였다고 생각하나
?

 

국내에서는 자전거 핸드메이드 제작 시스템이 아예 없어져버렸다. 그냥 남들 하는 대로 자전거포를 열고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자전거를 판매하는 길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었다.
내 손으로 직접 만들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미국에 가는 수밖에 없었다.

 DIY 인구가 많은 미국에는 자전거 제작 시스템이 마치 취미 생활처럼 대중문화의 한 부분으로 남아 있었고,
 마침 오리건 주에 자전거 학교가 있어서 7개월 동안 그곳에 머물며
내가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우고 돌아왔다

 

그렇게 어렵게 배운 기술을 대안학교인 민들레학교 학생들에게 무료로 가르쳐주는 것으로 안다.
그래도 괜찮은 건가?
아직까지는 기껏 자전거 정비
수업을 하고 있는 건데 부족하나마 그렇게 나눌 수 있어 좋다.

미국에서는 이런 식의 공방과 커뮤니티가 동네마다 무척 많은데
그 속에서 기술 공유가 잘 이루어져 보기가 참 좋았다.

그래서 나도 곧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수제 자전거 교실도 열려고 한다.


굳이 더 비싸고 무거운 수제 자전거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자전거는 평생 탈 수 있다.
게다가 자동차에 비해 훨씬 인문적인 이동 수단이기 때문에 더 공을 들이고 싶다.
저가의 중국산 자전거가 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사람이 정성 들여
직접 만든 핸드메이드의 가치, 이동 수단이자 자신만의 공예품이라는 인식을 가진다면 수제 자전거를 제작해
오래도록 타는 사람이 더 많아질 거라는 믿음이 있다.

 

더 이루고 싶은 꿈이 있나? 언젠가 시골에 내려가 자전거 공방을 운영하는 거다.
지금은 젊으니까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지내고 싶고 좀 더 나이가 들면 좀 고독해지더라도
진정한 장인의 길을 한번 걸어보고 싶은 개인적인 욕망 같은 거다.


마지막으로 존경하는 장인상이 있다면? 가장 이상적인 기술을 가진
세계 최고의 장인도 좋아하지만 우리나라 작은 자전거포에 계신 분들이 사실은 다 존경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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